[워홀 In 호주(12)] 조금씩 호주 생활에 적응해가다

칼럼니스트 레이첼 | 입력 : 2019/04/11 [18:19]

드디어 3일째. 전날보다 수월하게 일찍 일어났다. 오전 수업은 Academic Preparation I2-I3로 문법과 글쓰기가 합쳐진 수업인 듯 했다. 브라질인 2명, 콜롬비아인 1명, 태국인 1명, 한국인 2명 일본인 1명해서 총 7명의 학생이 듣는다. 선생님 이름은 캘리인데,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어 한글을 잘 읽는다. 어느 날은 점심시간에 태국 학생이 불닭볶음면 컵라면을 가져왔는데 캘리가 한글만 보고 부울..다악..볶흠면...?이라고 읽어 놀란 적도 있다.

 

부끄럽지만 오전 수업 학생 중 내가 제일 영어를 못했다. 눈치로 이해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점점 주눅이 들어 마음이 힘들었다. 그렇다고 따로 공부를 하냐? 그건 또 아니다. 실천하지 않음으로써 오는 스트레스는 엄청난데 게으름 때문에 그것을 오롯이 받기만 하는 나였다.

 

점심시간에는 일자리와 관련된 정보와 팁을 얻기 위해 모임에 참여했다. 열심히 설명해준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사실 점심만 먹다 나왔다. 미안해요 티쳐. 나는 스투핏 스튜던트에요.

 

한국인 모임인 것 같은 곳에도 갔다. 개원기념일 행사를 나라별로 준비하기 위함인데 별로 달갑진 않았다. 안 그래도 영어 못해서 스트레스 받고 있는데 끼리끼리 모이는 한국인의 특성상 한 번 무리에 끼면 편안함에 속아 계속 그들과 어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후엔 듣기 수업을 들었다. 어려운 토론 수업을 포기하고 바꾼 것인데 이 또한 레벨이 높았다. 그래도 토론 수업처럼 계속 말을 시키진 않으니 좀 나았다. 선생님은 나를 소개시켜주며 친구들과 인사시켰다. 나를 보고 있는 스무 명이 넘는 외국인 앞에 서 있는 기분이란. 없는 쥐구멍을 찾아 들어가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업 중 나의 재능이 뭐냐고 물어봤다. 순간 고민에 빠졌다. 나한테 장기가 있었던가.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어서 그냥 손바닥을 바닥에 대고 360도 회전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가볍게 말했는데... 어라? 나와서 보여달란다. 이걸? 일단 앞으로 나갔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고 부담이 커지니 오히려 담대해졌다. 까짓거 보여줬다.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겨우 이게? 깜짝 놀라며 소리치는 학생들 때문에 내가 더 놀랐다. 뒷자리에서 못 본 애들은 한 번 더 보여달라고 사정까지 했다. 몇몇은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찍을 준비도 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뜨거운 반응은 내 손바닥을 한 번 더 돌아가게 만들었다. 이번엔 휘파람과 함께 환호성까지 나왔다. 괜히 으쓱해졌다. 부끄럽지만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반응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나름 열정적이었던 수업이 끝나고 유학원에 들러 은행 계좌도 열고 텍스파일 넘버도 신청했다. 멤버십 카드도 발급해서 여행과 문법 강의를 신청했다. 무언가 계속 신청하고 있으니 점차 호주에 정착해가는 기분이었다. 제발 일자리를 늦지 않게 구해서 꼭 돈을 벌어 진짜 정착하기를. 돈이 없어서 한국에 돌아가는 일은 만들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집에 가는 길, 불친절한 버스에도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 이번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다가 제대로 내렸고 무사히 홈스테이 집에 도착했다. 따뜻한 침대와 이불 그리고 더 따뜻한 엘사와 리차드가 반겨주는 이 공간은 어느새 나의 안식처가 되었다. 낮에 있었던 장기자랑 시간에 대해 얘기하며 엘사와 리차드에게도 보여줬다. 둘이 즐거워하니 나까지 행복해졌다.

 

엘사는 늘 친절했다. 내 팔 안쪽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자 코코넛 오일을 바르라고 주었다. 정말 이렇게 섬세하게 챙겨주니 너무 고마웠다. 수업시간에 그렇게 기죽고 속상해하면서도 공부할 생각은 죽어도 안했던 내가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당신 덕분에 호주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외롭고 얼어있던 나의 마음을 따뜻한 배려와 관심으로 녹여줬다고. 단순히 고맙다는 말 말고 진짜 진정성을 담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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